아이 셋이 같이 달리기를 했어요. 요즘 셋째가 뭐든 1등을 하고 싶어 해서 형들이 좀 봐주겠거니 했는데, 첫째는 끝까지 1등을 놓지 않더라고요. 지기 싫어하는 아이 심리를 찾아보게 된 게 이날부터예요.
출발하고 형 둘이 앞서 나가니까 셋째가 울려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니까 둘째가 형한테 이러더라고요.
둘째 : “형아, 우리 조금만 천천히 갈까? 셋째가 1등 하고 싶나 봐.”
첫째도 속도를 좀 줄였어요. 그런데 조금 더 뛰다 보니 또 속도를 올리더라고요.
둘째 : “형아, 조금만 더 줄여야겠어.”
그래도 첫째는 계속 달렸고, 셋째는 또 울면서 떼를 썼어요. 결승선에는 첫째, 셋째, 둘째 순서로 들어왔습니다.
첫째는 9살이에요.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 때는 이기든 지든 크게 상관 안 하는데, 가족끼리 있을 때는 1등에 집착해요. 못 하면 토라지고 화내고 큰소리도 내고, 동생이 하는 것도 못 하게 해요. 9살 아들 승부욕이 왜 집에서만 이렇게 센지, 동생 봐주라는 건 알면서 왜 다시 속도를 올렸는지 궁금했어요.
그럴 수 있어요, 당연한 거예요
찾아보니까 지기 싫어하는 건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었어요. 양보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못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요.
첫째가 한 번은 속도를 줄였잖아요. 동생을 봐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다만 뛰다 보니 1등을 놓치기 싫은 마음이 다시 올라온 것 같아요.
밖에서는 괜찮고 집에서만 그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밖에서는 나름대로 참고 있다는 얘기니까, 이기적으로 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좀 내려놔도 될 것 같아요.
첫째 양보 못하는 이유, 1등을 놓지 못하는 세 가지 구조
첫째 양보 못하는 이유를 찾아보니까 크게 세 가지가 있었어요. 동생이 있든 없든, 지기 싫어하는 아이라면 대부분 비슷하대요.
1. 집은 참았던 걸 내려놓는 곳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루 종일 규칙 지키고 감정을 참아요. 그렇게 참은 게 제일 편한 곳인 집에서 터져 나온대요. 해외에서는 이걸 ‘하교 후 자제력 붕괴(after-school restraint collapse)’라고 부르기도 하더라고요. 집에서 화를 낸다는 건 여기서는 받아줄 거라고 믿는다는 뜻이기도 해요.
2. 첫째에게 가족 안의 1등은 ‘자리’
개인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동생이 태어났을 때 첫째가 느끼는 상실감을 ‘폐위(dethronement)’라고 표현했어요. 엄마 아빠 관심을 혼자 받다가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첫째한테 집에서 1등을 한다는 건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엄마 아빠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와 더 가깝대요. 친구들 사이 등수는 별로 신경 안 쓰는데 가족 안에서는 유독 예민한 이유가 이거였어요.
3. 동생 방해는 자리를 지키려는 행동
동생이 하는 걸 못 하게 막는 것도 같은 이유래요. 동생이 칭찬받으면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거예요. 형제가 많을수록 더 그럴 수 있고요. 외동이면 그 대상이 엄마 아빠가 되기도 한대요. “아빠한테는 절대 안 져” 이런 식으로요.
아빠의 깨달음: 내 칭찬도 ‘1등’이었다
달리기 끝나고 저는 아이들한테 따로따로 이렇게 말했어요.
아빠 (첫째에게) : “셋째는 아직 잘 모르고 잘 못 뛰니까 좀 봐주면서 해. 아빠는 네가 당연히 달리기 1등인 거 알지.”
아빠 (둘째에게) : “셋째한테 많이 봐줘서 고마워. 멋지다. 아빠한테는 네가 1등이야.”
셋째는 따로 달래주고, 저랑 둘이 한 번 더 뛰어서 1등을 하게 해줬어요. 그때는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글 쓰면서 칭찬에 대해 찾아보다가 걸리는 게 있었어요. 두 아이한테 한 말이 다 따뜻한 말이긴 한데, 결국 둘 다 ‘1등’으로 칭찬하고 있더라고요.
『마인드셋』을 쓴 심리학자 캐롤 드웩 연구팀의 칭찬 연구가 있어요. “너 똑똑하구나”처럼 결과나 능력으로 칭찬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실패할 수 있는 도전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대요. 반대로 노력이나 과정으로 칭찬받은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도 해보려고 했고요.
우리 집에 대입해 보니 이해가 됐어요. “네가 당연히 1등”이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 첫째한테 1등은 그냥 결과가 아니라 ‘나’가 돼요. 그러면 속도를 줄이는 게 양보가 아니라 내가 아닌 게 되는 느낌일 수도 있어요. 첫째가 다시 속도를 올린 데는 제가 해온 말도 영향이 있었을지 몰라요.
그럼 이제 뭐라고 말해야 할까
칭찬을 ‘1등’이 아니라 ‘행동’으로
같은 상황이 오면 이렇게 말해보려고 해요.
| 상황 | 예전에 한 말 | 바꿔볼 말 |
|---|---|---|
| 첫째가 속도를 줄였을 때 | (그냥 지나침) | “방금 동생 기다려준 거 봤어. 그거 진짜 멋있었어.” |
| 첫째가 결국 1등을 했을 때 | “아빠는 네가 당연히 1등인 거 알지.” | “끝까지 열심히 뛰었네. 근데 중간에 속도 줄여준 게 아빠는 더 기억에 남아.” |
| 둘째가 양보했을 때 | “아빠한테는 네가 1등이야.” | “셋째 마음을 먼저 알아챘구나. 그건 아무나 못 하는 거야.” |
등수 얘기를 안 하는 게 포인트예요. 1등이든 꼴등이든, 아빠는 네가 한 행동을 보고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요.
지면 우는 아이 대처법: 감정부터 읽어주기
첫째가 지고 화낼 때 저는 보통 이렇게 달랬어요.
예전
첫째 : “아 짜증나! 다시 해!”
아빠 : “괜찮아, 졌어도 아빠한테는 네가 1등이야.”
위로하려고 한 말인데, 돌아보니 이것도 결국 1등 얘기였어요. 이렇게 바꿔보려고 해요.
바꿔서
첫째 : “아 짜증나! 다시 해!”
아빠 : “진짜 이기고 싶었구나. 져서 엄청 속상하지.”
첫째 : “…응.”
아빠 : “그래도 끝까지 뛴 거 아빠가 다 봤어. 속상할 땐 소리 지르는 대신 ‘아빠 나 속상해’라고 말해주면 좋겠어.”
속상한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소리 지르는 건 그다음에 얘기하는 순서예요. 속상한 건 괜찮은데 소리 지르는 건 안 된다는 걸 같이 알려주는 방법이에요.
첫째만을 위한 짧은 시간
첫째가 집에서 1등에 매달리는 게 결국 아빠 관심을 확인하고 싶어서라면, 경쟁 말고 다른 방법으로 채워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동생들 없이 첫째랑만 하루 10분이라도 산책하거나 얘기하는 시간이요. 이기지 않아도 아빠 시간이 내 거라는 걸 느끼면, 1등에 조금 덜 매달리지 않을까 싶어요.
마무리: 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승리가 아니라 확신
지기 싫어하는 아이 심리를 찾아보면서 제가 배운 건, 첫째가 1등에 매달리는 게 이기고 싶어서라기보다 져도 괜찮다는 확신이 아직 없어서라는 거였어요.
다음 달리기에서도 첫째는 또 속도를 올릴 수 있어요. 그래도 이번엔 그 전에 속도를 줄였던 순간을 먼저 봐주려고요.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 비로소 질 수 있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지기 싫어하는 아이, 일부러 져주면 안 되나요? 지면 우는 아이 대처법이 궁금해요.
가끔은 괜찮지만 매번 져주면 지는 연습을 할 기회가 없어져요. 졌을 때 속상한 마음을 읽어주고 다시 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더 오래 가요.
Q. 밖에서는 괜찮은데 집에서만 그러면 문제인가요?
밖에서는 감정을 잘 조절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다만 동생을 다치게 하거나 화가 오래 간다면 소아청소년 전문가와 상담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Q. 외동인데도 1등에 집착해요.
대상이 동생 대신 엄마 아빠가 될 뿐 비슷한 이유예요. 결과 대신 행동을 칭찬하는 방법은 그대로 써볼 수 있어요.
참고
-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출생 순서와 첫째의 ‘폐위’ 개념
- Mueller & Dweck (1998), 능력 칭찬과 노력 칭찬이 아이의 동기에 미치는 영향 연구
- 캐롤 드웩, 『마인드셋』
- ‘하교 후 자제력 붕괴(after-school restraint collapse)’: 해외 육아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