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진라면 순한맛이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낮에 사다 줬습니다. 저녁에 어린이집 다녀와서 라면 먹겠다길래 엄마가 봉지를 뜯으려는데, 둘째가 어디서 작은 컵라면을 하나 가져왔어요. 자기가 숨겨놨던 거라면서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애들은 안 그랬는데 왜 둘째만 이렇게 숨기지? 왜 숨길까? 궁금해지면서 아이가 간식 숨기는 이유를 찾아보게 됐어요.
둘째 : “나 이거 숨겨놓은 건데, 난 이거 먹을래.”
엄마 : “이건 어디서 난 거야?”
둘째 : (대답 없이 그냥 웃기만 함)
옆에서 첫째는 “그럼 난 봉지라면 끓여줘” 하고, 셋째는 벌써 젓가락 들고 까딱까딱하고 있었어요. 그날은 셋 다 잘 먹었어요.
둘째는 원래 뭐가 생기면 바로 안 먹고 어딘가 잘 두거나 숨겨놔요. 그러다 나중에 꺼내 먹는데, 가끔 너무 오래 둬서 망가지거나 상해 있으면 엄청 슬퍼하면서 울어요.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럴 수 있어요, 오히려 잘하고 있는 거예요
찾아보니까 아이가 간식을 숨기는 건 욕심이 많아서도, 이상한 버릇도 아니었어요.
먹고 싶은 걸 참고 나중을 위해 남겨두는 건 어른도 쉽지 않잖아요. 6살이 그걸 스스로 하고 있다는 건 걱정할 일보다 칭찬할 일에 가깝대요.
아이 간식 숨기는 이유, 세 가지 마음
찾아보니 이 행동 밑에는 세 가지 마음이 있었어요.
1. 아끼는 건 ‘참는 힘’
심리학에서는 지금 받을 수 있는 걸 미루고 나중을 기다리는 능력을 ‘만족 지연’이라고 해요. 아이한테 마시멜로를 주고 기다리면 하나 더 준다고 했던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한 개념이에요. 6살 아이 물건 아끼는 심리 밑에는 이 참는 힘이 있대요. 둘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걸 하고 있었어요.
2. 숨기는 건 ‘나만의 것’을 지키는 방법
처음에 궁금했던 ‘왜 둘째만?’에 대한 답은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아이 셋인 집에서는 웬만한 건 다 나눠 먹어요. 과자 한 봉지도, 아이스크림 하나도 셋이 나눠요. 그런 집에서 숨겨둔 간식은 온전히 내 것인 몇 안 되는 물건이에요.
첫째는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 혼자였던 시간이 있었고, 셋째는 막내라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요. 둘째는 그 사이에 끼어 있어요. 나만의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둘째한테 더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어디서 났냐고 물었을 때 대답 안 하고 웃기만 한 것도 이해가 됐어요. 혼자 몰래 숨겨둔 게 딱 필요할 때 나왔으니 얼마나 뿌듯했을까 싶어요.
3. 망가져서 우는 건 아직 ‘시간’을 몰라서
아이들은 음식이 시간이 지나면 상한다는 걸 말로는 들어도 잘 와닿지 않는대요. 며칠이랑 몇 주가 얼마나 다른지 아직 감이 없는 나이라서요. 그래서 아껴두다 망가져서 우는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슬퍼해요. 아껴둔 시간만큼,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큰 것 같아요.
아빠의 깨달음: 엄마랑 아빠는 다르게 반응했다
예전에 둘째가 아껴둔 간식이 상해서 크게 운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랑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엄마 : “둘째, 그거 상해서 속상했어? 진작 먹지 그랬어?”
(아이가 크게 우는 동안 진정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줌)
엄마 : “우리 다른 거 먹어보자.”
아빠
아빠 : “그래, 아빠가 말했었지. 그거 놔두면 상한다고. 그러니까 다음에는 먹을 거 생기면 바로 먹어. 또 망가지면 슬프잖아. 그럼 다른 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까 차이가 보였어요. 엄마는 먼저 속상했냐고 묻고,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걸 먹자고 했어요. 첫째 얘기를 쓰면서 배운 ‘감정 먼저, 행동은 나중’ 순서를 엄마는 이미 하고 있었어요.
제 말에는 걸리는 게 두 가지 있었어요.
하나는 “아빠가 말했었지”예요. 저는 걱정돼서 한 말이지만, 울고 있는 아이한테는 “그러니까 네 잘못이야”로 들릴 수 있어요. 슬플 때는 그런 말이 귀에 안 들어오고 서운함만 남아요.
더 마음에 걸린 건 “다음엔 바로 먹어”였어요. 아껴두는 건 둘째가 잘하는 건데, 저는 그걸 하지 말라고 하고 있었어요. 둘째한테 필요한 건 아끼지 않는 게 아니라, 언제까지 아껴도 되는지 아는 거였어요.
그럼 이제 뭐라고 말해야 할까
울 때는 위로만, 얘기는 진정된 다음에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나눠서 말해보려고 해요.
바꿔서
우는 순간
아빠 : “아껴둔 거라서 더 속상하지. 아빠도 속상하다.”
진정된 뒤
아빠 : “다음엔 숨겨도 되는 간식인지 아빠랑 먼저 확인하자.”
같은 말이라도 언제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울 때는 마음만 받아주고, 할 얘기는 아이가 들을 수 있을 때 하려고요.
보물 상자는 우리 집엔 안 맞았다
처음엔 둘째만 쓰는 보물 상자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숨기지 않아도 맘 놓고 넣어둘 수 있는 자리요. 그런데 우리 집을 생각해 보니 안 될 것 같았어요.
호기심 많은 첫째는 거기 뭐 있냐고 수시로 물어볼 거고, 둘째는 결국 다 나눠줄 거예요. 셋 다 상자를 주자니 셋째는 아직 규칙을 못 알아듣고요. 날짜를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도 결국 제 몫인데, 솔직히 그건 오래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빠가 기억 안 해도 되는 방법을 찾아봤어요.
‘오늘 간식’과 ‘숨겨도 되는 간식’ 나누기
생각해 보면 금방 상하는 간식은 정해져 있어요. 빵, 우유, 과일, 아이스크림 같은 거요. 라면이나 과자는 웬만하면 몇 달 둬도 괜찮고요. 그래서 날짜 대신 이렇게 알려주기로 했어요.
아빠 : “빵이랑 우유는 오늘 먹는 간식, 과자랑 라면은 숨겨도 되는 간식.”
날짜를 못 읽어도, 제가 기억 안 해도 둘째가 혼자 정할 수 있는 규칙이에요. 이번에 숨겨둔 컵라면은 마침 숨겨도 되는 간식이었네요.
헷갈리는 건 받을 때 바로 적어주기
어느 쪽인지 애매한 간식은 받자마자 매직으로 포장지에 “일요일까지”처럼 크게 적어주려고요. 5초면 되고, 어디에 숨기든 간식에 적혀 있으니까 제가 잊어버려도 괜찮아요.
마무리: 아끼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빨리’가 아니라 ‘언제까지’
아이 간식 숨기는 이유를 찾아보면서, 둘째의 이 습관은 고칠 게 아니라 키워줄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할 일은 그걸 못 하게 하는 게 아니라, 아껴둔 게 실망으로 끝나지 않게 옆에서 도와주는 거였어요.
다음에 둘째가 또 어디서 숨겨둔 걸 들고 오면 저도 같이 웃어주려고요. 그리고 슬쩍 물어보려고 해요. “그거 오늘 간식이야, 숨겨도 되는 간식이야?”
“언제까지 괜찮은지”를 알려주세요.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가 간식을 숨기는 건 욕심이 많아서인가요?
대부분은 욕심보다 아끼고 싶은 마음, 나만의 것을 갖고 싶은 마음에 가까워요. 형제가 많아서 늘 나눠야 하는 집이라면 더 자연스러운 행동이에요.
Q. 아껴두다 망가져서 우는 아이, 어떻게 달래야 하나요?
우는 동안에는 “아껴둔 거라 더 속상하지”처럼 마음만 받아주세요. “그러게 빨리 먹지” 같은 얘기는 아이가 진정된 뒤에, 다음엔 어떻게 할지와 같이 하는 게 좋아요.
Q. 간식 말고 장난감이나 물건을 숨기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비슷한 이유예요. 다만 다른 사람 물건을 말없이 가져와서 숨기는 거라면,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는 얘기를 따로 해주는 게 좋아요.
참고
- 월터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 만족 지연(delay of gratification) 개념
